고지의무 위반이어도 보험금 받는 경우 — 인과관계, 누가 증명하나(상법 vs 표준약관)
“고지의무 위반이니 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통보에는 사실 두 가지 결정이 섞여 있습니다.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가와 이번 사고의 보험금을 안 줘도 되는가입니다. 대법원은 둘을 따로 봅니다. 해지는 유효해도, 알리지 않은 사항과 무관한 사고라면 보험금은 지급됩니다. 관건은 인과관계, 그리고 그것을 누가 증명하느냐입니다.
① 상법 제655조 — 본문은 부지급, 단서는 지급
상법 제655조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후라도 보험자가 제650조, 제651조, 제652조 및 제653조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였을 때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고 이미 지급한 보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단서는 「다만, 고지의무(告知義務)를 위반한 사실 또는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되거나 증가된 사실이 보험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음이 증명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입니다. 해지 전에 생긴 사고에 관한 규정입니다. 해지 후에 생긴 사고는 계약이 이미 끝났으므로 인과관계와 관계없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② 해지와 보험금은 별개 — 대법원 2010다25353
대법원 2010. 7. 22. 선고 2010다25353 판결은 고혈압 진단·투약 사실을 알리지 않은 피보험자에게 백혈병이 발병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면서도, 보험사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판결요지는 「보험자는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과 보험사고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불문하고 상법 제651조에 의하여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면서, 보험금에 관해서는 인과관계에 따라 지급책임이 달라지고 「그 범위 내에서 계약해지의 효력이 제한될 수 있다」고 정리합니다. 즉 계약은 해지되지만 이번 백혈병 보험금은 지급되는 구조입니다.
③ 상법에서는 계약자가 “무관함”을 증명해야 한다
상법 제655조 단서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음이 증명된 경우」라고만 씁니다. 누가 증명하는지는 판례가 정했습니다. 대법원 1992. 10. 23. 선고 92다28259 판결은 인과관계가 부존재하다는 점에 관한 「입증책임은 보험계약자측에 있다」고 봤습니다. 최근 대법원 2025. 1. 9. 선고 2024다272941 판결도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과 보험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관한 증명책임은 보험계약자 측에 있으므로, 만일 그 인과관계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인정할 여지가 있으면 위 단서는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재확인했습니다.
2024다272941 사건의 피보험자는 계약 직전 급성 신우신염으로 입원치료를 받았고, 계약 당일 백혈구·혈소판 등의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아 혈액내과 진료를 의뢰한다는 진료의뢰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최근 3개월 이내 의료행위” 질문에 “아니오”로 답했고, 4개월가량 뒤 만성기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원심은 인과관계가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백혈구·혈소판 수치 증가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의심할 수 있는 주된 지표라는 점 등을 들어 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며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④ 표준약관에서는 보험사가 “영향”을 증명해야 한다
현행 표준약관은 증명책임을 보험사에 둡니다. 생명보험 표준약관 제14조 제4항은 「계약 전 알릴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보험금 지급사유 발생에 영향을 미쳤음을 회사가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해지 또는 보장을 제한하기 이전까지 발생한 해당 보험금을 지급합니다」라고 정합니다. 질병·상해보험 표준약관 제16조 제6항도 「알릴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보험금 지급사유 발생에 영향을 미쳤음을 회사가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제4항 및 제5항에 관계없이 약정한 보험금을 지급합니다」라고 씁니다. 기본형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 제14조 제6항도 같은 구조입니다.
상법 제663조는 계약자에게 불리한 특약만 금지하므로, 증명책임을 보험사로 옮긴 약관 조항은 유효합니다. 다만 질병·상해보험 표준약관 제16조 제6항에는 「개정 2018.11.6.」 표시가 있습니다. 그보다 앞서 가입한 손해보험 상품이라면 내 약관의 해당 조항 원문을 꼭 확인하세요. 약관이 “회사가 증명”이면 인과관계가 애매한 사건은 계약자에게 유리하고, “계약자가 증명”이거나 상법만 적용되면 불리합니다.
| 증명책임 \ 인과관계 | 같은 질병 | 관련 가능 | 무관 |
|---|---|---|---|
| 회사가 증명 (현행 표준약관) | 부지급 | 회사가 증명 못 하면 지급 | 지급 |
| 계약자가 증명 (상법·판례) | 부지급 | 부지급 쪽 다툼 | 지급 |
해지 전 사고, 해지는 유효하다는 전제입니다. 해지 기간이 지났거나 해지 제한 사유가 있으면 알릴의무 위반은 애초에 거절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해지 기간 글).
⑤ 금감원 사례로 보는 “무관”과 “관련”
- 무관 → 지급(2025-11-06 보도자료): 어깨 질환 수술 필요소견을 알리지 않은 E씨가 상해사고로 어깨를 다친 사례, 알코올의존증 입원 이력을 알리지 않은 F씨가 상해사고로 사망한 사례. 금감원은 계약 해지는 타당하지만 과거 질병력과 상해사고는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상법과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 무관 → 지급, 계약은 해지(2024-07-02 보도자료): 2018-11-22 가입하면서 5년 이내 고지혈증·위염 30일 이상 투약을 알리지 않은 G씨가 2020-10-12 척추협착으로 입원·수술한 사례. 보험금은 지급됐고 계약은 해지됐습니다. 같은 자료는 이륜차 운전 여부를 거짓으로 알리고 위암이 발병한 경우를 인과관계가 없는 예로 듭니다.
- 관련 → 부지급(2024-07-02 보도자료): 2017~2018년 혀 염증·종양 진단·치료를 알리지 않고 2019-08-19 가입한 D씨가 2020-12-09 설암 진단을 받은 사례.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법원은 고지의무 위반을 인정했고 D씨는 보험금 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의정부지방법원 2023. 1. 31. 선고 2022가단103386 판결).
⑥ 해지되면 받는 돈, 돌려줘야 하는 돈, 다툴 기한
- 해약환급금: 해지되면 납입보험료가 아니라 해약환급금을 받습니다(생명 제14조③, 질병·상해 제16조③). 금감원은 「알릴의무 위반으로 계약이 해지될 경우 납입보험료의 대부분은 돌려받을 수 없음(해약환급금지급)」이라고 안내합니다(2024-02-27).
- 이미 받은 보험금: 인과관계가 있는 사고로 이미 받은 보험금은 반환 청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상법 제655조 본문).
- 보장 제한: 생명보험 약관은 해지 대신 부담보·감액 같은 「보장을 제한」하는 방식도 둡니다(제14조①).
- 통지서 확인: 보험사는 위반 사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는 사유를 「반대증거가 있는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서면 등으로 알려야 합니다(생명 제14조②, 질병·상해 제16조④).
- 시효: 보험금청구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합니다(상법 제662조). 부지급 통보를 다툴 때 기간을 관리하세요.
- 상법 제655조(계약해지와 보험금청구권)·제662조(소멸시효)·제663조(보험계약자 등의 불이익변경금지). 원문
- 금융감독원.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별표 15] 표준약관 — 생명보험 제14조, 질병·상해보험 제16조, 기본형 실손의료보험 제14조 (2026-08-28 발령, 2026-09-10 시행). 원문
- 대법원 2010. 7. 22. 선고 2010다25353 판결(보험계약해지무효확인). 원문
- 대법원 1992. 10. 23. 선고 92다28259 판결(보험금). 원문
- 대법원 2025. 1. 9. 선고 2024다272941 판결(보험금). 원문
- 금융감독원. 주요 민원사례로 알아보는 소비자 유의사항 — 계약전 알릴의무 관련(질병·상해보험 편). 보도자료, 2024-02-27. 원문
- 금융감독원. [금융꿀팁 154] 보험계약 전 알릴의무(고지의무) 관련 유익정보 및 유의사항을 안내해 드립니다. 보도자료, 2024-07-02. 원문
- 금융감독원. 주요 분쟁사례로 알아보는 소비자 유의사항 — 의료과실 사고 및 고지의무 관련. 보도자료, 2025-11-06. 원문